첫 직장에 입사해 3개월 정도 근무했을 때 일입니다. 저는 크레인 및 특장차 제조업체에서 처음 해외영업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당시 회사는 인도네시아 수라바야 공항과 발리파판 공항에 항공기용 소방차를 납품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미 차체는 개조되어 인도네시아로 출고된 상태였고, 차량 운행방법과 정비방법을 업체에 교육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현지 기술자들이 회사를 오가며 기술을 습득하던 시기였습니다.
하루는 그동안 수고한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에게 한국 관광을 시켜주라는 미션을 받게 됩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던 중 한국의 미를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하여, 당시 제 사수였던 팀장님과 함께 한국민속촌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당일 아침이 되었고, 팀장님께 본인은 좀 늦을 것 같으니 기술자들과 먼저 아침식사를 하고 있으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당시 회사가 번화가와 상당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 없었는데 회사 가까운 곳에 기가 막힌 뼈해장국 집이 있었습니다. 따로 멀리 나가기도 좀 그래서 그 집으로 갔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인도네시아는 기본적으로 이슬람이 주를 국가이고 바이어들 역시 무슬림들이었습니다. 무슬림들이 돼지를 먹으면 안 된다는 사실 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뼈해장국이 돼지등뼈로 만든다는 상식은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멍청하게도 뼈해장국이 당연히 소뼈로 만든다고 생각했거든요.
본인들 앞에 펼쳐진 뚝배기. 그 안에 의심스러운 뼈에 붙은 고기를 바라보며,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은 이게 정말 소고기가 맞냐고 몇 번이고 저에게 확인했습니다. 저는 아주 당당하게! '오브 콜스, 이츠 비프'라고 외치며 무슬림들과 뼈해장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얼마 후 팀장님이 오셨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셔서는
"야! 쟤네 돼지고기 먹으면 안 되는데 이걸 먹으면 어떡해!"라고 하셨고
저는 해맑게
"네? 뼈해장국 소뼈로 만드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깍두기를 아삭아삭 씹어가며 뼈를 뜯고 있는 기술자, 뼈는 다 먹고 밥 말아먹고 있는 기술자, 내용물을 다 비우고, 국물을 음미하고 있는 기술자 등 눈앞에 펼쳐진 참사(?)를 팀장님과 함께 넋 놓고 바라봤습니다. 정말 어찌나 아찔하던지.
그때 팀장님은 원효대사 해골물 비슷한 소리를 하시면서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고, 끝까지 말하지 말라고 하고 넘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기도 하는데 그 기술자들한테는 정말 두고두고 미안합니다. 평생 자기들의 신념에 따라 해오지 않던 일을 저의 무지함 때문에 어기게 된 것이니까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0년 동안 해외영업을 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도시와 국가를 방문했습니다. 지금도 다양한 문화권의 바이어들을 만나며 늘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지금은 각 나라의 정세를 신경 써서 조심히 말을 건네거나, 바이어 접대를 할 때도 더 조심스럽게 종교에 맞는 음식을 선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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