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디스크/허리디스크 일기

허리디스크 일기 [2] - 지옥의 시작

제라드 2021. 11. 23. 13:51

 

디스크의 통증의 시작은 과도한 운동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20대 초반부터 디스크와 싸워왔다. 툭하면 허리가 아팠다. 어떻게든 건강한 허리를 유지하고자 스물셋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내 인생은 디스크-운동-디스크-운동의 반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12월 10일 - 디스크 탈출 1주일 전

 

디스크 탈출에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크게 3가지 이유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과도하게 푹신한 매트리스

 

입주할 때부터 침대가 구비된 집이었는데 침대라기 보단 소파 2개를 붙여놓은 것에 가까웠다. 자면서 중간에 갈라진 부분이 자꾸 신경 쓰여서 이케아에서 큰맘 먹고 매트리스를 구매했다 (가서 확인하고 샀어야 되는데 ㅠ) 잠자리에 크게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라 매트리스가 거기서 거기겠지라는 생각으로 적당한 가격과 사이즈의 매트리스를 샀다. 처음 며칠은 만족하며 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한 느낌이 들기보단 늘 찌뿌둥하고 허리가 아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과도하게 푹신한 침대는 요추 전만을 무너뜨려 허리에 무리를 주게 된다.

 

*과도하게 딱딱한 바닥이나 침대도 척주를 일자로 만들기 때문에 허리에 좋지 않다. 바닥 생활을 한다면 하기 사진과 같이 허리와 바닥 사이에 수건 하나를 말아 넣어 요추전만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백 년 허리 (정선근) - 203p 발췌
 

2. 낮은 모니터와 잘못된 자세

나는 시력도 안 좋고 난시도 심하지만 안경 쓰는 게 너무 귀찮아서 안경을 안 썼었다. 눈이 안 좋다 보니 일할 때 모니터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늘 구부정한 자세로 일을 했다. 게다가 회사 책상도 낮고 모니터 받침대 같은 것도 없어서 자세는 더 무너졌다. 그리고 나는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좋지 않은 자세로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가 퇴근할 때 쯤되면 목이 뻑뻑하니 딱딱하고, 허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다리 꼬고 앉는 것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비추한다. 어떤 의사 말을 빌리자면 한쪽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은 팔 한쪽을 부러뜨리는 것과 같고, 균형을 맞추겠다고 반대편 다리를 꼰다면 멀쩡한 나머지 팔도 부러뜨리는 짓이라고 했다.

 

백 년 허리 (정선근) - 187p 발췌, 요추전만을 무너뜨리는 자세 1

 

백 년 허리 (정선근) - 193p 발췌, 요추전만을 무너뜨리는 자세 2

 

 

3. 무리한 운동

앞서 언급했듯, 나는 디스크와 싸우기 위해 20대 이후부터 운동을 했다. 하지만, 허리가 안 좋다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드리프트는 절대 하지 않았다. 데드리프트는 잘만 한다면 최고의 전신 운동이지만 잘못된 자세로 한다면 허리에게는 최악의 운동이다.

 

내가 운동하던 그날은 유난히 컨디션이 좋았다. 무게도 쉽게 쳐지고, 펌핑 감도 금방금방 느껴졌다. 그런 컨디션 좋은 날을 조심해야 한다...... 몸이 가벼우니 데드리프트에 도전하게 됐다. 적정한 무게로 했을 땐 자세 유지도 잘 되고, 근육에 텐션도 잘왔다. 그러면 안됐는데 조금 더 무게를 치고 싶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무게를 늘렸다. 갑자기 허리에서 '툭' 하면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나 났고, 소리와 함께 주저앉았다. 결과적으론 운동하다가 허리를 다친 꼴이 되었지만, 앞에 두 가지 원인들이 지속적으로 후방 섬유륜을 찢고 있었을 것이다. 운동하면서 약해진 섬유륜을 찢고 수핵이 나왔을 뿐.

 

*코어 근육을 키워 놓으면 근육들이 코어를 잘 잡아주어서 허리에 무리가 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맞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는 운동보다는 유지가 훨씬 중요하다. 허리가 아플 때는 무리한 운동보다는 평지를 가볍게 자주자주 걸어주는 것이 훨~~~~ 씬 좋다! (허리에 통증이 있을 땐 무리한 등산도 금지!)

 

데드리프트 시 잘못된 자세

 

내 허리디스크를 스토리를 이야기하자면, 네덜란드 주재원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나는 2018년부터 네덜란드에서 주재원 생활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5년짜리 스폰 비자였고, 5년을 채우면 영주권 심사를 볼 자격이 주어졌다. 더럽고 치사해도 꼭 5년을 채우자라는 호기로운 마음을 갖고 네덜란드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디스크가 내 발목을 잡았다. 12월 15일경 허리디스크가 탈출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앞으로 허리가 굽는 보상성 측만이 생겼다. 결국 2021년 1월 17일. 3년간의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네덜란드는 GP (Home Doctor)라는 가정의학과에서 먼저 진료를 한 후 담당 의사들이 관련 전문 병원으로 인도하는 시스템이다. 당시는 코로나가 한창 퍼지고 있을 때라 병원을 예약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진통제로 간신히 일주일을 버틴 후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물리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우리나라처럼 바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예약 후 또 일주일을 버텼다.

 

한국처럼 저주파 마사지기를 생각했는데 한 노파가 엎드리라고 하더니 5분 정도 허리를 만지더니 끝이었다. 화가 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나아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갔지만, 한 번 받아보고 나서 바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발권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금방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통증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다음 화에 계속-